자생적인 토착견과 전래견의 혼배
지리적으로 아시아 대륙의 동남단에 위치한 한반도는 자생적(自生的)인 문화 이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대륙문화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개의 가축화 과정에서도 가능한 두 가지의 가설(假說)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이 두가지 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미미하나마 존재한다.
먼저 한반도 내에서 자생적인 개의 순화(馴化)과정이 있을수 있었다는 증거로는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무덤인 동래패총(東萊貝塚)과 신석기시대의 무덤인 김해패총(金海貝塚)에서 사람이 사육한 것으로 보이는 개의 뼈가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서아시아의 팔레스티나 지역인 예리코에서 위의 유골과 거의 동시대의 개뼈가 발견되었다는 사실과 유사하다.
다음으로는 대륙에서 이미 순화과정을 거친 개가 한반도로 전래되었을 가능성의 증거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고 있는 몇가지 대표적인 개종류의 원형이 이미 신라나 고려의 그 림 및 문헌에서 발견되고 있고 그모양이 북방계의 대형견종이나 몽고 및 티베트견종과 흡사 하다는 것을 들수있다.
이를테면 대구지방의 삽살개는 티베트의 대형견 마스티프 종이, 진돗개는 몽고의 몽고견이 남하(南下)
하여 토착화되었다는 주장인데 외형상으로 보아서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유전자를 통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따라서 위 두가지 가설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우리나라의 개는 본래의 토착견과 외래견이
이미 오래전부터 혼배(混配)를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일반적인 설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기록은 삼국지 부여조
아무튼 확인할 수 없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문헌에 최초로 개가 등장한 것은 부여시대로 여기에는 개가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서 열전 부여조(三國志 魏書 列傳 夫餘條)에 보면 부여의 관직 명칭의 하나로 "구가(狗加)"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구(狗)란 곧 개를 말한다. 이것이 마가(馬加), 우가(牛加)등의 가축화된 동물이름과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시대에는 개의 순화가 완료 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뒤 고구려 시대에는 개가 사냥용으로 쓰일 정도까지 개발, 훈련되었다.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유적인 무용총(舞踊塚)의 벽화에 사냥을 따라나선 개의 그림이 거의 실물크기로 그려져 있는 사실이 위의 추측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쯤에서는 사람의 생활속에서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하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기530년 대 (일본의 안무천황 재위시)에는 거래가 잦았던 백제에서 많은 사냥개를 수입해 갔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견들은 그 품성이 뛰어나 고마이누(高麗犬), 또는 가라이누(唐犬, 韓犬)이라 불리워짐과 아울러 그들의 신사(神社)앞에 석상으로 만들어 세우고 숭앙했다고 한다.
삼국시대를 지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개에 관하여 기록된 문헌들이 더욱 많이 등장한다. 우선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記)"에 의하면 서기 680년에는 신라의 아찬(阿 ) 김정나(金頂羅)가 당시 일본의 천황인 천무(天武)에게 개를 가져와서 바쳤다고 되어있고 그로부터 6년뒤인 686년에는 다시 신라의 왕이 일본에 개 세 마리를 보내 주었다고 되어있다. 또 같은 일본사서인 "속 일본기(續 日本記)"에는 서기 732년 신라사(新羅使) 김장손(金長孫) 등이 성무(聖武) 천황에게 개 한 마리를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책응원구(冊應元 )"에는 중국 당나라의 현종 11년과 18년(723년, 730년)에 각각 신라에서 개 한 마리를 보냈고 "당서(唐書)"에는 동왕 21년(733년)에는 신라 성덕왕(聖德王)에게 개 세 마리를 보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고려시대로 넘어오면 그 사대 악부(樂府)중에 "견분곡(犬墳曲)이라는 노래까지 전해지고 역사서인 "고려사(高麗史)"권29 충열왕 8년 4월조에는 "진고개의 충견" 이야기도 실려있다.
한반도의 개가 일본개의 원류(?)
이미 백제시대 이후로 일본에는 고마이누나 가라이누 등 한반도와 연관된 개이름이 등장하거니와 여기에
더해 일본의 "고락(古樂)"중에는 고려때 일본으로 전해진 "고려견곡(高麗犬曲)"이 있고 신라때 일본으로
건너간 잡기중에는 "견무(犬舞)"도 있어 최근까지도 전해왔다고 한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개를 구했다고 하는 기록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자주 볼 수 있는 흔한일로 되어있다.
먼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세종 2년(1420년)에는 대마도 사람이 개를 구하러 왔으나
마침 명나라에 진공(進貢)할 물건이라 거절당하였고 동왕 12년(1430년)에는 일본교토의 좌무위(左武衛)에 큰 개 한 마리를 동왕 20년(1438년)에는 대마도에 큰 개 한먀리를 하사하였다고 하였으며 문종때에 이르러서는 일본 비후의 국지위방(菊池爲房)의 청에 의해 개 두 마리를 하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의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 이후로는 이미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조정(朝廷)간에는 통상의 예물로서 오고 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럼 그때까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길러졌던 개들은 어떤 종류들일까. 현재 진돗개에 이어 우리나라 특유의 토착견으로 각광받기 시작하고 있는 삽살개는 티베트의 마스티프 종이 남하하여 토착화된 것이고 역시 티베트계 스파니엘도 오래전부터 발바리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재상가(宰相家)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원래 스파니엘은 중국을 거쳐 영국으로 건너가서는 페키니즈란 이름이 붙기도 했고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것들은 저패니즈 칭이 되었다.
위의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몇점의 그림이 전하는데 한때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작으로
알려졌던 작가 미상의 "맹견도(猛犬圖)"를 보면 북방의 대형견 마스티프가 쉽게 연상되고 오원(吾園)
장스업(張承業)의 그림에 묘사된 삽사리를 보면 벨가모 시프독(Belgamese Sheepdog)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다양한 개 종류를 묘사한 조선시대의 그림
조선시대 화가중에서 16세기때 사람 이암(李巖)은 "모견도(母犬圖)"라는 그림에서 세 마리의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바둑이를 그려 남기고 있다. 이어서 18 세기에 이르러서는 경암(鏡岩)이라는 화가가 남긴
"응수도(應狩圖)"라는 그림에 진돗개와 닮은 검정개가 그 려져 있고 역시 동시대 사람 김두량(金斗樑)도
"견도 (犬圖)를 남기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시대의 민화(民畵)중 문배도(門排圖)로 그려진 개 그림도 기억해둘만하다.
이렇게 전해오던 우리나라의 개들은 한일합방을 전후로 개화의 바람이 불면서 소위 외래견들과 접촉이 잦아져 점점 잡종화 되고 말았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당시 양견(洋犬) 사육바람이 들었던 일본인 들인데 일제의 확장세력을 따라 반도에 정착하게 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살던 육지와는 달리 외따로 떨어진 섬 지방인 진도나 거제도, 완도 등에는 종자 보존이 비교적 잘 되었고 섬 지방은 아니지만 산악지대인 개마고원 일대(함경남도 풍산)에는 사냥에 능하고 용맹한 풍산개가 있었다.
한편 진도지방의 특산견인 진돗개나 개마고원 지역의 풍산개는 일본인들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바 있고 진도개는 현재 국견(천연기념물 제 53호 지정)으로서 보호 육성되고 있다.북한의 풍산개는 민간교류나
제3국을 통하여 상당수 반입되어 길러지고 있으며, 거제도의 사냥개와 제주도의 목마견
(牧馬犬)인 제주개, 그리고 완도의 해남개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원형을 찿을 길이 없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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